현대인들이 '바쁜' 이유 Comment(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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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크 <밤새서 과제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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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학생들은 '효율적'으로 공부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이 노력하고 있다고 느끼기 위해, 스스로에 대해 더 나은 기분을 느끼기 위해 공부를 한다(...) 종잇장들을 멍하니 응시하면서, 그리고 이해가 됐으면 그냥 고개나 끄덕이면서, 몇 시간을 보낸다(...)"
<경제학 패러독스> - 타일러 코웬 -

(,,,)역시나 인간은 스스로를 위하는 자위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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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사학자 더글라스 노스(Douglas North)의 [경제사 속의 구조와 변화](Structure and Change in Economic History)를 읽다보면 국가 형성과정에 있어서의 효율성과 효과성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일반적으로는 사람이나 국가나 모두 가급적 적은 자원을 투여해서 가급적 많은 소득을 얻기를 추구한다. 효율성이다. 하지만, 이건 소득의 총량과는 상관이 없다. 10을 투여해서 20을 얻는 것이 투입과 산출의 최적화를 이루는 지점이라면, 여기서부터는 투자를 더 해 더 많은 총소득을 얻더라도 효율성을 떨어지는 선택이 된다. 많이 투여해서 적게 얻게 되는 거니까. 효과성은 총산출량과 관련이 있다. 얼마를 쏟아붓든 최대한 얻는 것이 효과성을 추구하는 것이다. 100을 쏟아부어서 1을 더 얻는 짓은 무쟈게 비효율적이지만 효과는 있다. 투입을 해도 얻는 게 없게 되는 순간이 효과성이 0이 되는 지점이다.

국가가 전쟁을 하면 효율성은 쓸모 없는 개념이 된다. 100을 때려넣어 1을 더 건지더라도 이겨야 살아남는 상황에서 효율성을 따지는 것은 넌센스다. 10만명이 죽더라도 이겨야 국가가 살아남지, 효율성 따져 자원관리할 환경이 아닌 것이다. 전쟁을 통해 최적화된 국가구조가 확산된 근대 초기 유럽 시절 이야기다. 하지만 그것도 정도가 있다. 버틸 수 있는 절대적 자원의 한계가 있고, 버틸 수 있는 체력의 한계가 있다. 어느 지점부터는 합리적 수준의 효율성의 성취가 국가의 생존과 발전의 주요한 변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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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효율적으로 시간만 낭비 하면서 그걸 '바쁜 스케줄'이라며 과시하기까지 하는 멍청한 현대인들의 자화상에 대처?하는 방법으로는 2가지의 길이 있을 것 같다. 한가지는 '합리적'인 관점에서 효과성을 효율성으로 전환하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비합리적'인 인간의 본성을 그대로 인정하는 길일 것이다. '합리적 인간관'과 '제한된 합리성'의 대립 또한 위와 같은 2가지의 길 중 하나를 택하는 문제와 관련이 있다. 쉽게 말하면, '경제학을 개조하느냐' or '인간을 개조하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이와 비슷한 문제로서 선의의 정부를 가정하는 케인즈식 관점과, 정부 또한 사익을 추구할 뿐이라는 공공선택이론의 대결에 대해서도 위와 같은 딜레마가 존재하고 있다. 즉, '고치는게 가능하다'라는 주장에 대하여 도리어 '고치려는 자야말로 고쳐져야 한다'라며 투쟁하게 되는 것이다. 프로이트식으로 말하자면 이드와 수퍼에고 사이의 충돌이고, 사상적으로는 낭만주의와 계몽주의의 대립인데, 쉽게 말하자면 본능에 충실하려는 본능과 이성적 판단 사이의 갈등이랄까(,,,)

아무튼 이 모든 게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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